희망과 행복의 샘 Spring of Hope & Happiness
유기열의 씨알여행 179] 은대난초..꽃-향 일품, 은대난초 씨를 보았나요? 본문
은대난초 열매
은대난초 씨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행운이다. 씨는 생겨도 잘 여물지 않고, 먼지처럼 작아 눈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씨는 길이 1㎜, 지름 0.2㎜도 안 되어 먼지 같다. 만지면 손가락에 밀가루처럼 묻는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씨 알갱이 겉엔 얇은 반투명 비닐 같은 날개가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먼지 같은 비닐봉지에 검은 알갱이가 들어 있는 모양새다.
은대난초를 재배해서 판매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씨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씨를 심어 기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난(蘭)은 가장 진화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꽃이 일품이고 은은한 향(香)도 매혹적이다. 하지만 일반식물의 씨와 달리 난과(蘭科)식물의 씨는 영양분인 씨젖(胚乳)이 없고 발아를 하여 식물체를 만드는 배(胚)가 완전하지 않다. 이 때문에 스스로 발아가 어렵고, 발아를 한 뒤 식물체로 자라기 힘들다. 이를 위해서는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곰팡이 즉 난균(蘭菌)은 주로 숲속 흙이나 나무껍질 등에 살고 있다. 난초를 온실이나 집에서 씨를 심어 기르기가 어렵고, 조직배양이나 포기나누기로 번식하는 이유다.
은대난초(Cephalanthera longibracteata Blume)역시 난과 식물이다. 이름은 잎이 댓잎을 닮은 난초라는 댓잎난초에서 유래되었다.
실제로 은대난초 잎은 세로 맥이 뚜렷하고 억세어 댓잎 같다. 일본명 역시 サササバギソソラソ(笹葉銀蘭)로 조릿대를 닮은 은난초라는 뜻이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영어이름이 없는 것은 은대난초의 원산지가 한국(?)이고 한.중.일에 분포하기 때문이 아닐까?
속명 Cephalanthera는 그리스어 머리(頭)인 Cephalos와 꽃밥(葯)인 Anthera의 합성어다. 이것은 은대난초의 꽃술은 암술과 수술이 융합한 자웅예합체(雌雄蘂合體, 蘂柱, Column)이며, 이것의 앞부분에 수술덮개(Anther cap)가 머리모양을 하고 있어 이름 지어졌다.
종(소)명 longibracteata는 라틴어 길다는 longus와 꽃싸개잎(苞葉)이 있다는 brateatus의 합성어로 긴 포엽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은대난초 꽃차례의 맨 아래의 꽃싸개잎은 길어서 꽃보다 위로 솟아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은대난, 댓잎은난초, 은대란이 있다.
은대난초와 비슷한 은난초가 있다. 자라는 곳이나 꽃 모양이 비슷하여 헷갈리기 쉬운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래와 같이 눈으로 보아 쉽게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꽃은 5~6월에 피고 순백색이며 꽃부리가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줄기 끝에서 1개의 꽃대가 나오며 길이는 5~15㎝다. 아래의 1~3개의 포엽은 꽃이나 열매보다 길다.
그러나 포엽은 올라갈수록 작고 짧아져 맨 위의 포엽은 맨 아래 것의 1/10도 안되고 열매나 꽃길이보다 짧다.
씨방은 씨방하위(Inferior ovary)로 꽃잎이 달린 초기에는 왼쪽으로 감기는 나선형이나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가면서 직립형으로 변한다.
열매는 삭과(蒴果)로 얼핏 보면 양끝이 좁은 타원형의 6각 기둥 또는 긴 타원형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3면의 가운데 세로 능선이 있는 양 끝이 좁은 정삼각기둥이다. 열매 위 끝엔 꽃잎 등이 말라서 실이나 리본처럼 붙어 있다.
익으면 3개의 능각에 틈이 생긴다. 틈이 커지면 능각으로 보이던 것이 뚜껑처럼 열리며 벌어진다.(면 가운데 능선은 벌어지지 않는다.) 가는 띠 같은 뚜껑(맥)이 열어지면 그 아래 마주한 2면(面) 사이가 벌어진다.
열매 색은 초기에는 녹색이고 익으면 갈색, 흑갈색, 회갈색 또는 회백색이다. 익기 직전엔 능각과 능선 부위는 연녹색, 연 노란색을 띠고 각 면은 흑청색이나 진청색을 띠기도 한다.
크기는 길이 2.5~3.5㎝, 각 변의 너비 3.5~5.0㎜다. 광택은 없고 겉은 매끄럽지 않고 까칠한 편이다. 물에 뜬다.
열매는 자루가 없으며 5~15㎝의 사각형 이삭줄기를 올라가며 어긋나 달리며, 열매가 붙는 곳에 포엽이 있다. 1개 이삭줄기에는 3~10개의 열매가 달린다.
열매는 익으면 가장 튀어나온 3능각의 띠(맥) 부위에 틈이 생겨 벌어진다.
그러면 띠가 덮고 있던 아래의 2면이 벌어지며 씨가 나온다.
2면은 맞닿아 있을 뿐 완전히 꿰매어져 있지 않는 것이 특이하다. 열매껍질은 딱딱하고 두께는 0.1~0.2㎜다.
열매는 6~7월에 맺힌 뒤 8~9월이 되면 다 커서 겉으로는 다 익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익는 기간이 길어 11월이 되어도 외관상 변화가 없고 잘 익은 열매 찾기가 어렵다.
잘 익었다고 생각해서 따보면 열매 속은 벌레가 먹어 없거나 썩어 재처럼 되어 있기가 일쑤다. 정상의 익은 씨는 찾기 어렵다.
일부 열매는 이듬해 2~3월이 되어도 벌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고, 간혹 일부는 벌어져 있거나 열매껍질 3조각이 다 떨어지고 3개의 띠만 가는 실처럼 붙어 있기도 한다.
이처럼 열매는 그런대로 잘 맺힌다. 허나 성하고 잘 익은 열매는 많지 않다. 몇 년간을 관찰했는데 열매 속은 비어 있거나 숯가루를 뭉쳐놓은 썩은 물질 같은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완숙한 씨 찾기는 더욱 어렵다. 설령 익은 씨를 본다 해도 너무 작아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고 그것이 씨인지 먼지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작다. 이런 탓인지 도감이나 자료에도 은대난초 씨의 모습이나 관련 내용이 거의 없다.
내가 본 은대난초 씨는 김주환 외 2명이 쓴 ‘한국식물종자도감, 2011, 아카데미서적’ 에 있는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 사진이다.
여기에 은대난초 씨는 “종자의 외피는 날개 형이며 표면은 망상 형(網狀形)이며 세포벽은 융기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처럼 문헌이나 자료에서도 보기 어려운 은대난초의 씨를 각고(刻苦)의 노력 덕분에 직접 눈으로 보았다. 보는 순간 신기했다.
씨는 양끝이 좁고 가는 긴 타원형이다. 실처럼 생긴 짧은 반투명 비닐봉지에 검은색 또는 흑갈색 알갱이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알갱이를 싸고 있는 날개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씨 껍질(Cellular sheath or Seed coat)이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아 그렇지 그냥 보면 작은 먼지 같다. 일반 자로는 크기를 재기 어렵다. 조심스럽게 캘리퍼스(Calipers)로 쟀다.
길이 0.5~0.7㎜, 지름(두께나 너비) 0.05~0.15㎜다. 색은 초기에는 흰색이다. 익으면 가장 자리는 희거나 누런색이며 알갱이가 들어 있는 부위는 검거나 흑갈색이다.
씨는 광택은 없다. 물에 뜬다. 물에 며칠을 담가놓아도 가라앉지 않았다.
은대난초에서 익은 씨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느낌이다. 열매를 까서 보면 비어 있기 일쑤다. 뭔가 있어 보면 검은 재를 버무려 뭉쳐 놓은 것만 있기도 하다.
그것을 말려서 비비면 그저 검은 재 같고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것은 벌레가 먹어 구멍이 뻥뻥 뚫려있고 속은 허탕이다. 더러는 썩어 문드러져 있기도 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수년간 실패하고 기다린 끝에 연이어 2010~2012년에 은대난초의 씨를 보았다. 1개 열매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씨가 들어 있었다.
볼품은 없었지만 은대난초 씨를 보았을 때의 기쁨과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는 자체가 그토록 놀랍고 기쁘다니 참 희한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기만 해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 ***** ***** ***** ***** ***** ***** ***** ***** ***** ***** ***** ***** ***** ***** ***** ***** ***** ***** ***
농학박사 유 기 열(Dr Ki Yull Yu, 劉 璣 烈)
GLG자문관(Consultant of Gerson Lehrman Group)
시인(Poet)
전 르완다대학교 농대 교수 '유기열의 르완다' 연재
e-mail : yukiyull@hanmail.net
Blog : http://blog.daum.net/yukiyull
Facebook : http://www.facebook.com/yukiyull
'스크랩(씨알여행 글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기열의 씨알여행 181] 털별꽃아재비..잎과 줄기는 물론 열매도 털 수북 (0) | 2017.07.05 |
---|---|
유기열의 씨알여행 180] 낙상홍..꽃 한번 못 보고도 누구나 좋아하는 열매 (0) | 2017.06.19 |
유기열의 씨알여행 178] 종덩굴..열매, 잔털이 달린 긴 꼬리 올챙이 같아 (0) | 2017.05.22 |
유기열의 씨알여행 177] 회화나무...스스로 운다는 꽃을 보았는가? (0) | 2017.05.08 |
유기열의 씨알여행 176] 나비나물..5년지난 열매껍질 물만나 다시 살아나 (0) | 2017.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