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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열의 씨알여행 171] 원추리..꽃은 새끼 꼬듯 지고 씨는 페트병서 발아 본문
다양한 육종 재배품종들
“아~ 새 싹이다!”
2006년 12월에 열매와 같이 채종(採種)하여 페트병에 넣어둔 원추리 씨가 2007년 2월에 새싹을 냈다? 흙 한줌 없는 빈 페트병 안에서 새 싹이 나다니! 씨의 대단한 생명력에 그저 감탄하고 놀랐다.
하도 신기해 발아된 씨를 병에서 꺼내, 보고 또 보고 만지며 관찰했다. 새 싹의 잎은 초록으로 약1cm, 뿌리는 하얗고 약2cm 정도였다.
전에 근무했던 국립르완다대학교 농대에도 원추리가 많이 자란다. 여기서는 원추리를 주로 화단의 경계식물로 키우며 꽃이 피면 꽃대를 다 잘라낸다. 꽃보다 잎의 관상 가치를 높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다 인부들이 빼먹은 꽃대에 노란 꽃이라도 피면 반가워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곤 했다.
원추리 열매 |
원추리는 보이는 바와 달리 하루살이 꽃이다. 헌데 꽃이 여러 날 피어 보이는 까닭은 꽃 대 하나에 여러 개의 꽃이 날짜를 달리하여 이어서 피기 때문이다. 속명 Hemerocallis가 그리스어 hēmera(Day,하루)와 kalos(Beautiful,아름다움)의 합성어인 데서도 하루살이 꽃임이 잘 나타나 있다. 영명도 하루살이백합(Daylily)이다.
그러나 한글 이름 원추리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 이름은 중국명 훤초(萱草)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훤초가 원초로 변하고, 모음조화에 의해서 원추로 변한 뒤 여기에 리가 붙은 것이다. 산림경제에서는 업나물, 훈몽자회에서는 넘나물(넓나물, 廣菜)로 쓰여 있단다.
재미있는 있는 이름은 여인들이 원추리를 가까이 하거나, 원추리 꽃을 머리에 꽂거나 노리개로 차고 다니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득남초(得男草), 의남초(宜男草), 의남화(宜男花)라고 한다. 이것은 원추리 꽃봉오리가 아기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아들을 낳으니 근심이 사라진다 하여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부른다. 망우초라고 불리는 또 다른 이유는 원추리를 무덤가에 심으면 망자(亡者)에 대한 그리움을 쉬 잊을 수 있어서라는 설과 원추리나물을 많이 먹으면 취하고 의식이 몽롱해져 무엇을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어린잎과 꽃봉오리를 나물, 겉절이 같은 요리를 해서 먹으면 여인의 가슴과 오목가슴을 시원하게 트이게 해준다 하여 녹총화(鹿蔥花)와 모애초(母愛草)라고 불린다. 이 밖에도 원추리 노란 꽃으로 만든 나물을 금침채(金針菜), 황화채(黃花菜), 화채(花菜), 어린 순을 무친 나물을 훤채라고 하며 뿌리를 지인삼(地人蔘)이라고도 한다.
원추리는 세계적으로는 약40여 종이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원추리 외에 애기, 노랑, 골잎, 각시, 큰, 왕, 태안, 홍도, 함양, 백운산 원추리 등이 분포한다. 꽃이 아름다워 재배품종이 많이 육종된 결과 세계적으로 등록된 재배품종은 80,000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재배품종이 많아 서부지원장 때 직접 재배한 품종만 수십 품종이 넘었다. 이들 개량된 재배품종 원추리는 꽃 색이 노랑, 자주, 주홍, 주황, 베이지, 보라 등 다양하고 모양도 꽃잎이 좁고 긴 것, 짧고 넓은 것, 무늬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등 여러 가지다.
원추리 열매는 둥근 타원형이다. 나리열매와 비슷하나 길이가 짧다. 윗부분은 넓고 아래 부분은 다소 좁다. 3실 6방이다. 색깔은 처음에는 녹색이며 익어갈 수록 연노란 색으로 변한다. 완전히 익어 마르면 갈색, 검은 갈색 또는 회백색으로 된다.
페트병속에서 발아한 원추리 싹 |
크기는 길이 1.5~4.0cm이고 지름 1.0~2.5cm이다. 광택은 없다. 물에 뜬다.
익으면 열매의 볼록한 부위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3조각으로 갈라져 씨가 빠진다. 열매 겉의 골은 갈라지지 않는다.
씨는 열매 1개에 수십 개씩 들어 있다. 씨는 둥근 타원형이며 검은 색으로 윤기가 난다. 길이는 5.0~7.0㎜이다.
씨를 심어서 키우려면 열매가 완전히 익은 때보다 다소 빨리 씨를 받는 게 좋다.
발아(發芽)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기 중에서도 싹이 날 정도로 발아력이 세고 생명력이 강하다. 그저 씨를 흙 속에 심어만 주면 된다. 그러면 씨는 반드시 약속을 지켜 싹을 내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식물의 꽃이 지는 모습은 다양하다. 벚꽃은 꽃잎을 흩날리며 진다. 동백은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진다. 원추리는 그렇지 않다.
식물의 꽃은 아름답지만 떨어지면 대부분 너저분하다. 장미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런 꽃도 떨어지면 지저분함이 느껴진다. 원추리는 그렇지 않다.
원추리 꽃이 지는 모습은 특이하다.
원추리는 꽃가루받이(受粉)가 끝나면 시들어가는 꽃잎을 가운데로 모은다. 그런 다음 말라가는 꽃잎을 새끼와 반대방향으로 꼰다. 그렇게 해서 따로따로이던 6개 꽃잎(사실은 꽃잎 3, 꽃잎 같은 꽃받침 3)을 엮어 한 몸처럼 만든다. 이 때문에 원추리를 합환화(合歡花)라고도 한다.
그런 뒤에도 바로 꽃이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꽃자루에 붙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딴꽃가루받이(他家受粉)를 막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르완다대학교 농대의 경계식물로 자라는 원추리 |
꽃이 질 때는 말라비틀어진 채로 떨어진다. 마르고 꼬아져서 그런지 깨끗하고 깔끔해 보인다. 꽃의 아름다움은 물론 싱싱함마저 버리고, 몸을 완전히 비운 탓도 있으리라.
원추리는 그저 몇 시간 피었다 지는 꽃이다. 그런데도 꽃이 질 때는 진지하다. 조급해 하거나 나대지 않는다. 방정맞거나 요란하지 않다. 생(生)의 소멸을 받아들이고 아주 서서히 빈 몸을 추스르며 마지막을 준비한다. 버리고 비우기를 거듭한다. 그런 뒤에 미련 없이 순순히 진다. 만약 뜻대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원추리 꽃이 지는 모습을 따르고 싶을 정도로 맘에 쏙 든다.
원추리 씨는 한 방울 물도, 한 줌 흙도 없는 대기 중에서 싹을 내고 살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꽃은 차분하고 깨끗하게 순리대로 생을 마감할 줄 안다. 생성과 소멸을 되풀이 하며 대(代)를 이어가는 존재로서 어찌 원추리의 이런 점을 본받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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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학박사 유 기 열(Dr Ki Yull Yu, 劉 璣 烈)
GLG자문관(Consultant of Gerson Lehrman Group)
시인(Poet)
전 르완다대학교 농대 교수 '유기열의 르완다' 연재
e-mail : yukiyull@hanmail.net
Blog : http://blog.daum.net/yukiyull
Facebook : http://www.facebook.com/yukiy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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