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행복의 샘 Spring of Hope & Happiness
유기열의 일상다반사 - 상상만 해도 징그럽고 무서운 경험,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The past disgusting and scary experience, just imagining, helps me endure the weight of life) 본문
유기열의 일상다반사 - 상상만 해도 징그럽고 무서운 경험, 삶의 무게를 견디게 해(The past disgusting and scary experience, just imagining, helps me endure the weight of life)
futureopener 2025. 3. 6. 22:11회충이 입으로 나와
회충(蛔蟲)이 똥꼬와 입으로 동시에 나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징그럽고 무섭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일을 실제로 겪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로 기억한다. 배가 아파서 마당 구석에 있는 측간(厠間)으로 뛰어 가서 똥을 싸는데 똥 속에 회충(Ascaris lumbricoides)이 섞여 나와 꿈틀거렸다. 당시 이런 일은 내 또래 애들에게도 가끔 있었다. 그런데 목구멍이 간지럽더니 나도 모르게 구토(嘔吐)를 했다. 그러자 그 구토 물에서도 희멀건 회충이 꼼지락거렸다. 입으로 회충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정말 징그럽고 역겨웠다.
“엄마~”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소리쳐 엄마를 불렀다.
입과 항문으로 나온 회충은 지저분한 배설물 위를 기어 다녔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기분이었다. 정말 더럽고 살 떨렸다.
어머니가 놀라서 뛰어왔다.
“애야, 왜? 무슨 일이냐?”
“여기 봐봐.”
나는 손가락으로 회충을 가리켰다. 회충은 내 뱃속에서 나와서 내가 게우고 싸 놓은 더러운 물질 속을 계속 꿈틀거리며 휘저었다.
“회충이 입으로도 나왔어요.”
이 말을 듣고 어머니도 놀랐다. 그러나 잠시 뒤 “괜찮다. 똥 다 싸면 빨리 오라.”는 말만 하고 떠났다.
나는 용변을 마친 뒤 샘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입을 헹구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바로 어머니에게 달려 갔다. 어머니는 한 사발의 갈색 물을 주면서 마시라고 했다.
“엄마, 이게 뭐에요?”
“응, 물에 된장과 간장을 섞어 풀어놓은 거다. 이거 마시면 괜찮다.”라고 했다.
나는 아무 의심 없이 그 된장과 간장을 섞은 물을 마시면 회충이 없어질 거라 믿고 어머니가 주는 물을 마셨다. 그때는 어머니는 나에게 신(神)이었다.
그런 뒤 종종 늙은 누런 호박을 삶아서 식구와 같이 먹고 나면, 어머니는 항상 호박씨를 나만 먹으라며 주어서 먹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호박씨가 한약 명으로 남과인(南瓜仁)이라고 하며 구충제(驅蟲劑)의 효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뒤로 더욱 어머니의 지혜로움과 자식사랑에 놀라며 고마워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도 나의 회충감염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회충약이 없었는지 아니면 회충약을 살 형편이 안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회충약을 먹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충이 입으로 나오는 일은 더 없었다.
1960년대 초반까지도 시골농촌은 기생충감염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정부는 1966년4월25일에 법률제1789호로 기생충질환예방법을 제정하였고, 1967년3월2일에 보건복지부령제193호로 기생충질환예방법시행규칙을 제정하였다. 이런 법률적 기반이 마련되어 1969년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단 기생충구제사업이 실시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성장에 따른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회충을 비롯한 기생충 감염이 급감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회충 감염률이 1969년 55.4%에서 1989년 0.3%로 뚝 떨어졌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국민 식생활 수준의 향상, 인분사용을 하지 않는 등의 영농방법 개선, 구충효과가 높은 기생충 약의 개발, 기생충예방 등을 포함한 보건위생교육의 실시로 회충은 물론 거의 모든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지금 한국은 안전한 나라가 되었다. 회충이 입으로 기어 나왔던 처참한 기억이 생생한 나는 기생충감염 걱정 없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내 몸은 회충의 안방 노릇을 했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만도 고마운데 회충이 입으로 나왔던 과거의 험한 경험이 지금은 내가 고난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주다니! 더 나아가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며 즐겁게 살 수 있는 지혜와 여유로움을 주다니! 인생이 힘들어도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다.
필자 주
1. 내가 초등학교 때 살던 집은 조그만 초가집이었다. 집 마당 한쪽 구석 외양간 옆에 측간(厠間,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칙간이라고 불렀다.)이 있었다. 말이 변소지 문도 없고 똥통 하나 있고, 급하면 그냥 잿더미나 땅 바닥에 똥오줌을 싸고 재로 덮는 게 일상이었다.
2. 기생충감염률 등은 “서흥관 외2명, 1992. 한국 장내기생충 감염의 시대적 변천과 그 요인에 대한 관찰. 의사학(醫史學) 제1권제1호, 45~63쪽”을 참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