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행복의 샘 Spring of Hope & Happiness
황제의 지고 지순한 황후 사랑의 상징, 타지마할 본문
쾌 오래 전인 데도 인도의 타지마할을 거닌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렌다.
그것은 타지마할의 웅장함이나 과학성 또는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왕비에 대한 왕의 사랑이야기가 너무 감동적이고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은 꿈 때문이다.
내가 타지마할을 직접 보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그것이 불교나 흰두교 성전으로 알았다. 그와 같은 내 상식과 생각은
타지마할을 구경하는 순간 완전히 빗나갔다.
그건 무덤이었다. 사람들이 무섭고 징그럽다고 여기는 무덤이었다.
뒤로는 자므나(야므나)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갔을 적에는 강은 말라 거의 물이 없었고 강에는 소들이 한가로히 풀을 뜯고 있었다.
앞으로는 인공으로 만든
길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에 타지마할이 비쳐 아름다움과 멋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타지마할은 왕과 왕비의 무덤이었다.
타지마할은 네개의 탑같은 기둥이 있다. 그 기둥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킨다고 했다. 천 년 그 이전에 어떻게 그토록 정확한 동서남북
방위를 정할 수 있었는지 지금도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중앙에는 하나의 돔이 있고 그 아래 지하에는 무덤이 있다. 그 무덤에는 왕과 왕비의
시신이 든 관이 안치되어 있다. 밖으로부터 햇빛이 들어와 그 관 위에 비치도록 되어 있다.
지상의 중앙에 또 2개의 관이 있다. 그 관은
지하 무덤에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다만 시신이 안 들어 있다,
벽 면에는 많은 그림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 그림에는 동물은 하나도
없고 꽃과 식물만 있다. 그 이유는 그 지역이 가뭄이 심하여 풍족한 비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했단다.
이 무덤이 만들어진 전설같은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왕비를 극진히 사랑했다. 그런데 그 왕비가 병이 들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하여 치료를 했지만
왕비는 끝내 죽게 되었다.
왕은 왕비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왕비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찾고 생각했다. 그 결과 왕은
왕비가 죽은 후에라도 편안하게 안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훌륭한 무덤을 만들어 거기에 모시기로 했다. 그것이 왕이 왕비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지고 소중한 사랑의 선물이라고 믿었다.
왕비는 무덤이 완공되기 전에 죽었고 시신은 무덤이 완공되기까지 임시로 그 인근에 가매장
해놓았다가 완공후 안장했다.
왕도 죽으면 왕비 옆에 묻어달라고 했고 유언에 따라 왕비 옆에 나란히 묻혔다.
왕은 무덤이 완공 된 후
그 무덤을 만드는데 참여한 모든 석공들의 손을 잘랐다고 한다. 그 까닭은 그런 아름답고 웅장한 무덤을 다시는 만들지 못하도로 하기 위해서였다니
왕이 왕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상상할 수 있으리라.
타지마할, 무덤이지만 무섭거나 더럽다는 생각은 아니 들고 황제의 황후에 대한 지고
지순한 사랑만 느껴졌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거든,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끼고 싶거든 꼭
인도의 타지마할을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시 한 편>
제목 : 타지마할
뒤엔 야므나 강이 흐르고
앞엔 물 거울
바람결 따라 흔들린다.
달빛 깊은 밤이면
첨탑은 기지개를 켜고
원형 돔은 여인의 가슴이어라.
손목이 잘린 석공들
지하에서도 저주와 통곡이겠지만
황제의 사랑 앞엔 조용하다.
사랑을
잃거나,
하고 싶거나,
알고 싶은.... 사람들이여
타지마할에 한 번 가보렴.
때 없이 몰려오는 그들에게
타지마할은 잠들지 않고
언제나 이야기 해준다.
사랑은 아름답고 영원한 것
서로 사랑하라고.
- 시집 "바다에는 후회 없는 길이 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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