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열의 씨알여행229-잠깐 멈추어 은대난초 씨를 한번 보세요(KiYull Yu's Seed Story 229-Stop for a moment and look at Cephalanthera longibracteata seeds)

은대난초 잘 익은 씨는 해변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씨는 길이1㎜도 안 되는 먼지 같아 만지면 손가락에 가루처럼 묻는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씨는 얇디얇은 반투명 미농지(美濃紙) 같은 껍질(날개) 안에 검은 알갱이가 들어있는 타원형이다. 1개 열매에는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씨가 들어있다.

 

은대난초 익은 씨

은대난초 어린열매 안의 어린 씨

나는 2010년8월에 처음 은대난초 씨를 직접 보았다. 그 뒤 2011. 2012년에도 은대난초 씨를 확인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첫째, 은대난초 자체를 보기 어렵고, 둘째, 열매는 그런대로 잘 맺히나 익은 것이 많지 않으며, 셋째, 외관상 익은 열매로 보여도 열매를 쪼개어 보면 속이 텅 비어 있고, 있는 씨는 썩고 벌레가 먹어 문드러져 있다.

 

넷째, 설령 성한 씨가 있어도 먼지 같고, 가루(재)를 버무려 뭉쳐 놓은 듯하다. 말려서 비벼 보면 재처럼 되고 씨는 잘 보이지 않으며, 다섯째, 온전하게 성숙한 씨가 극히 적고, 여섯째, 잘 익은 씨도 너무 작아 눈으로 대충 보아서는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탓인지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은대난초 씨의 사진을 아직 보지 못했다. 

 

열매에는 수만 개 이상의 씨가 들어 있다. 열매는 3개의 능각 띠가 껍질에서 떨어지고, 그 아래 붙어 있던 열매 조각이 갈라져 씨를 내 보낸다.

 

씨 모양은 언뜻 보면 먼지 같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하면 양끝이 가늘고 좁은 긴 타원형이다. 사진을 확대하거나 물에 담가서 보면 양끝이 실처럼 생긴 짧고 좁은 타원형의 반투명 미농지 같은 봉지에 검은색 또는 흑갈색 알갱이가 들어 있는 모양이다. 알갱이를 싸고 있는 날개(봉지)로 보이는 것은 일종의 씨껍질(Cellular sheath or Seed coat)이다. 크기는 먼지 같아 일반 자로는 재기 어렵다. 조심스럽게 캘리퍼스(Calipers)로 쟀더니 길이0.5~0.7㎜, 중앙의 지름(두께나 너비)0.05~0.15㎜였다. 

 

물위에 떠 있는 은대난초 씨

은대난초 열매안의 씨

색은 초기에는 흰색이다. 익으면 가장 자리는 희거나 누런색이며 알갱이가 들어 있는 부위는 검거나 흑갈색이다. 광택은 없다. 가벼워 물에 뜬다. 물에 며칠을 담가놓아도 가라앉지 않았다.

 

난(蘭)은 가장 진화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꽃이 일품이고 은은한 향(香)도 매혹적이다. 하지만 일반식물의 씨와 달리 난과(蘭科)식물의 씨는 영양분인 씨젖(胚乳)이 없고 발아를 하여 식물체를 만드는 배(胚)가 완전하지 않다. 때문에 씨 스스로 발아가 어렵고, 발아를 한 뒤 식물체로 자라기 힘들다. 이를 위해서는 곰팡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곰팡이 즉 난균(蘭菌)은 주로 숲속 흙이나 나무껍질 등에 살고 있다. 난초를 온실이나 집에서 씨를 심어 기르기가 어렵고, 조직배양이나 포기나누기로 번식하는 이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엔 은대난초의 씨를 직접 보고 만져 보았다. 볼품은 없지만 은대난초 씨를 본 순간의 환희(歡喜)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씨를 보는 자체가 그토록 놀랍고 기쁘다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보기만 해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필자 주

김주환 외 2명이 쓴 ‘한국식물종자도감, 2011, 아카데미서적’에 광학현미경과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은대난초 씨의 사진이 있다. 여기에 은대난초 씨는 “종자의 외피는 날개 형이며 표면은 망상형(網狀形)이며 세포벽은 융기 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