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스러운 백두산 천지
1992.10. 2일 나는 백두산 천지(天池)에 갔다왔다.
백두산 정상을 가려 했는데 눈이 많이 쌓여 정상을 가는 차량이 운행되지 않아 걸어서 천지를 갔다. 천지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길을 만들면서 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장백폭포 아래로 난 물길을 따라 걸어갔다. 가는 길에 노천 온천물에 삶은 달걀을 노파 한 분이 팔고 있어서 하나 사서 먹었다. 신기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이 뜨거워 달걀이 삶아질 수 있다니! 나는 신기하다는 생각을 오랜동안 떨치지 못 했다.
장백폭포 가까이 이르니 경사진 비탈이 나타났다. 바위, 돌, 자갈 등으로 되어 있고 경사가 심하였다. 그냥은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손을 집기도 하고 허리를 최대한 구부려 엉금엉금 기기도 하면서 올랐다. 바람은 세게 불고 쌓인 눈(雪)을 밟으며 가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았다. 손은 얼고, 얼굴은 살이 터지는 듯 했다.
그렇게 얼마를 고생을 해서 그 비탈을 다 올라 장백폭포 위에 이르니 평원이 보였고 그 평원 위로 한 줄기 물길이 길게 뻗어나 있었다. 이상하게 장백폭포 아래서는 그렇게 세게 불던 바람도 멎고 춥지도 않았다. 나는 물 줄기를 따라 걸었다. 한참을 가니 눈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야. 천지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천지 방문을 축복이라도 하듯 구름한 점 없이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작열했다. 금방이라도 손을 들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천지는 연못이 아니었다. 그러니 천지가 아니라 천해(天海)나 적어도 천호(天湖)라고 불러야 맞다고 본다. 바람은 그다지 세게 불지 않았지만 바다의 파도가 치듯 천지의 물은 밀려오고 밀려갔다.
천지는 하늘 아래 첫 바다였다. 물은 맑고 차가웠다. 물 아래에는 잔 자갈들이 있었다. 매끈 매끈한 조약돌 같았다. 손을 물 속에 넣고 그 돌을 만지기도 하고 끄집어 내 보기도 하고 물을 떠서 몇 모금 마시기도 했다. 온 몸이 식어 내리는 듯 하고 시원 상쾌했다. 천지 둘레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천지 주변 땅에는 겨울 준비를 위해 봄 여름 무성했던 들풀들의 잎과 줄기가 말라 널려 있었다.
천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 여러가지 의문이 생겼다. 어떻게 이 높은 산 정상에 이런 바다 같은 큰 호수가 있을까? 이 많은 물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인가? 이 물은 어떻게 지하로 스며 빠지지 않고 이렇게 고여 있을까? 이 물 속에 물고기는 사는가?(나는 눈으로 볼 수 있는한 찾아보았지만 물고기를 볼 수 없었다.)....
천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저보고 발로 밟아보고 몸으로 느껴보아도 여전히 천지는 신비로웠고 그 신비는 풀리지 않았다. 천지에 있는 나 자신도 신비롭게 여겨졌다.
나는 한 시간 이상 천지에 머물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며 신비에 쌓여 꿈을 꾸듯 보냈다. 천지의 기상은 하도 변덕스러워 오래 머물수가 없다 했다. 기상이 걱정된 나머지 천지를 떠나려니 더 머물지 못하는 아쉬움이 컸다. 그 아쉬움을 간직한 채 올라갔던 길을 다시 걸어 천지 아래로 내려오니 큰 일을 한 기분이 들었다. 기쁨도 컸다.
장백공원 안의 버스 종점(장백공원 안을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부근에 있는 온천탕에 들어가 긴장과 피로를 풀겸 온천욕을 했다. 시설은 보잘 것 없었다. 동네 목욕탕 수준도 안 되었다. 그러나 물은 좋았다. 온탕 물이 어찌나 뜨거운지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참고 물 속에 몸을 담갔더니 좋았다.
한 시간 쯤 온천 욕을 즐기고 밖으로 나와 백두산을 바라보니 정말 딴 세상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저 좋고 좋았다.
지금도 천지는 파도를 치며 하늘을 푸르고 맑게 담고 있겠지. 언제 다시 보아야 할텐데, 다시 그 날이 쉬 왔으면 좋겠다.